2019. 5. 20. 12:08 ◑ Got impressed/By books

부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심리 수업


신간이라 대출 기간이 일주일인 관계로 저번주 내내 열심히 읽었는데, 내용도 좋아서 집중해서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어떤 심리학 책에서 충조평판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읽은 적이 있는데, 사실 사람인지라 평가나 판단을 안 내리며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함부로 평가,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 나를 위해, 타인을 위해 좋은 삶의 태도인 것에는 동의하지만 아예 안 한다는 것은 다소 이상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하던 차에 만난 책이라 더 잘 읽혔다.

이 책은 특히, 칭찬과 비난 이라는 두 큰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평가 혹은 판단이 매 순간 일어난다는 것을, '자동 판단 장치'가 존재함을 언급한다. 판단을 억누르기 보다는 자동으로 일어나는 것임을, 판단의 속성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갖가지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판단이라는 걸 하게 되는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 같고 미성숙하다고 생각하면서 판단 내리려는 마음을 억제하려고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것 같다. 판단하는 행위 자체는 당연한 것이므로 부정적으로 판단 내리려는 내 마음을 인식하고 조절하려 노력하면서 주위 사람들과 더 즐겁게,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책의 상당 부분에 밑줄을 긋고 싶을 정도로 와닿고 좋았다. 소장해서 두고 두고 펼쳐보면 좋을 것 같다.


91 나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자 하는 충동은 심지어 비난의 상대가 없을 때에도 생겨난다. 나는 침대 모서리에 발가락을 부딪히고 나면 아무 죄 없는 금속 프레임에도 화를 내고 싶은 충동이 솟구친다. 이상하게 보이는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실제로 자신의 실수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때로는 기존의 생각을 터무니없이 왜곡해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논리적인 설득으로 비난을 피하려는 술책인 셈이다. “공격은 자기 정당화를 낳고, 이는 다시 더욱 심한 공격으로 이어진다.”

109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품은 채 비난을 쏟아내면 우리의 건강까지 위협받는 셈이다. 다른 사람을 탓하며 비난하면 일시적으로는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나의 상황이 다른 누군가의 잘못으로 생겨난 결과라면, 내 삶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통제 아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실수를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아주 어린 아이들도 잘못을 하면 고개를 숙이고 뭔가 모를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 깊이 후회하고 있다는 표현이다. 그러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사과의 힘을 학습한다. “미안해”라는 말은 우리의 실수를 인정하고 어떠한 비난도 달게 받겠다는 사과의 표현이다. 여기에는 죄책감을 알아 달라는 바람도 포함되어 있다. 잘못에 대한 후회보다 중요한 것은 미안하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곧 나의 잘못된 행동으로 상처받은 상대방을 가치 있게 여긴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나 관계에서 보상이나 자백, 속죄 등의 행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랑하고 의지하는 사람으로부터 다시 인정을 받고 비난의 공포를 잠재울 수 있다.

133 부모는 대개 자녀의 감정을 판단한다. 엄격한 판단 체계를 갖고 있는 가정의 경우, 일부 감정을 나쁜 것으로 여기며 아이가 그 감정을 표현했을 때 “그런 생각을 가지면 안 돼”라고 비난을 가한다. 그러나 보다 유연한 판단 체계가 작동되는 가정은 전혀 다르다. 아이들이 표현하는 감정이 내면의 문제를 나타낸다고 간주하고 “왜 이런 생각을 했니”라는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를 향한 감정도 판단의 대상이 된다. 가족, 특히 부모에 대한 애정과 존경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무례와 반감, 무시 등의 감정은 대개 용납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렇다고 이런 감정이 전혀 생겨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생겨날 경우 비난을 받는 것이다. 비단 가족 구성원에 대한 감정뿐만 아니라 이웃, 선생님, 동료, 친구에 대한 감정도 판단 대상이 된다. 분노, 질투, 증오 등의 감정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금기시되며, 아이들은 인내와 공평함, 온순함, 관용 등의 중요성을 교육받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때때로 ‘용인되지 않는’ 감정을 느낀다. 이런 경우 상대방의 반응은 수치심을 느끼거나 전혀 신경 쓰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비난의 감정에는 똑같이 비난으로 맞서거나 무시해 버릴 수 있고, 칭찬의 감정에는 호기심과 관심을 보일 수 있다(이 같은 감정에 대한 승인이 보류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146 위니콧이 언급한 대로 ‘존재의 뿌리’로부터 생겨나는 욕구와 칭찬을 받는 것의 중요성, 이 둘의 균형을 이루는 것은 어쩌면 평생의 과제다.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기억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나면 실망하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심리학계에서는 이를 ‘성찰적 기능’이라고 일컫는다. 내가 갖고 있는 감정 패턴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패턴이 일상의 크고 작은 반응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이해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마치 어딘가에 갇혀 있다가 풀려난 것 같은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신경 활동이 진정되면서 그 기능은 더욱 강화되고, 사고와 욕구를 측정하는 뇌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진다. 그런데 우리의 판단 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비단 가족만이 아니다. 보다 넓은 대인 관계, 특히 친구 간의 관계 역시 칭찬과 비난의 감정 패턴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189 우정의 가장 긍정적인 기능은 개인적 판단과 사회적 판단 사이에서 하나의 틈새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 틈새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칭찬에는 더욱 힘을 얻고 비난에는 크게 상처받지 않도록 마음을 토닥여 나간다. 이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이를 테면 ‘일과 사랑, 부모로서의 역할 등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가?’ 같은 문제에 있어 친구들의 판단을 하나의 지렛대로 삼는다. 개인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는 사소한 장애가 우리의 근본적인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확신을 친구에게서 얻는다. 배우자나 자녀 관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도 친구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친구는 우리에게 ‘여러 문제들과 상관없이 너는 좋은 사람이고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어’라는 자신감을 심어 주는 존재라는 점이다.

197 조화로운 결혼 생활에 가장 큰 위협은 성적 매력의 감소가 아니라 서로에게 꼭 필요한 칭찬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관계와 마찬가지로 부부 사이에서도 긍정적 또는 부정적 시각으로 매사에 서로를 판단한다. 거의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부부는 다음과 같은 질문, 즉 ‘배우자가 나의 진가를 알고 있는가?’, ‘배우자가 나를 제대로 대접하고 있는가?’, ‘부부 관계를 존중하는가? 배우자가 나의 기대를 충족하는가?’, ‘나는 여전히 배우자를 존경하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상대방에 대한 실망과 비난으로 인해 사랑이 없어진 것은 아닌가?’ 등의 질문을 마음속에 품은 채 배우자의 행동과 감정을 평가한다.

 요컨대 칭찬을 지속하고 비난을 조절하는 것은 결혼 생활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다.

200 가트맨 박사의 연구 결과 부부싸움을 하느냐 안 하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비난의 양과 비교해 칭찬이 얼마나 되느냐였다. 비난은 칭찬보다 그 여파가 훨씬 크다. 더 많은 감정을 유발하며 기역에도 강하게 남는다. 그래서 비난으로 인한 상처가 흡수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횟수의 칭찬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칭찬과 비난의 비율이 5:1 일 때 결혼 생활이 가장 원만하게 유지되었다. 이를 ‘마법의 비율’이라고 하며, 결혼 생활의 지속 여부를 예측하는 지표로 사용된다.

207 단 한 번의 문제나 다툼도 배우자에 대한 평소의 불만과 합쳐지면 대개 일반화된 비난으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남편 혹은 아내의 단순한 실수도 심각한 성격적 결함처럼 보일 수 있다.

 일반화된 비난은 전염성이 강하다. 비난당한 배우자는 똑같은 방식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 하지만 비난에 대한 우리의 자동 방어 기제는 갖은 이유를 끌어대며 상대방을 탓하게 하며, 자신의 분노를 스스로 정당화한다. 거친 말들을 쏟아 내며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서는 공정치 못한 자기 태도는 부정한 채 모든 원인을 배우자 탓으로 돌린다. 남편 혹은 아내의 부당한 행동에 자신은 그저 대응만 했을 뿐이라면서 말이다.

210 비난의 화살이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면, 구체적인 실수나 판단 착오 등만 비난하는게 아니라 상대방의 정체성 자체를 공격하게 된다. 그런데 대체 나의 정체성에 관해 상대에게 어떻게 사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로 인한 손해를 어떻게 보상한단 말인가? 스스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배우자에게 인정받으면 모든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까? 이처럼 특정 행동이나 말이 아닌 성격 자체를 비난하면 배우자에게 상당한 무력감을 안겨 준다. 이 상태에서는 수치심까지 겹쳐 비난을 받은 상대는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나의 존재 자체를 비난하는 거라면,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숨어 버리거나 아예 사라져 버리는 것뿐이야.’

226 모든 부부는 서로의 욕구와 희망을 조율해 나가며 칭찬과 비난을 주고받는다. 이 과정에서 부부 관계가 침몰하는 것은 어느 한쪽이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잘못된 비난 방식과 칭찬의 부재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반대로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이어 가는 부부의 경우 끊임없이 서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면서 ‘칭찬의 프레임’을 유지할 수 있는 상호작용 패턴을 부부가 함께 찾아간다.

229 또한 판단을 내릴 때 떠오르는 기억은 대부분 자기 편향적이다. 자기 자신에 관한 기억이든 다른 사람에 관한 기억이든 상관없다. 그래서 자신의 긍정적인 노력은 곧잘 떠올리는 반면 부정적인 말과 행동은 최대한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부부가 서로 판단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누가 얼마나 더 많은 칭찬을 했는가에 대한 언급은 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노력의 대가에만 집중하게 되면 결혼 생활은 결국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30 “나는 당신을, 당신은 나를 판단하게 될 거야. 하지만 서로의 좋은 점을 무시하거나 나쁜 점을 과장해서는 안 돼. 이 부분은 최대한 노력하자. 부정적인 판단이 강하게 들면 대화를 통해 풀어 나가고, 끊임없이 비난하는 행동만큼은 피하자. 상대가 힘들어하는 상황에서는 서로를 위안하며 공감과 지지를 보내 주어야 해. 또 상대방의 성격을 판단할 때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말이나 행동을 판단할 때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 사소한 잘못 하나를 성격 문제로 몰아서 비난해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가 없어. 때로는 여러 편견에 빠져 스스로의 자존감은 지켜 내지만 부부 관계는 위험에 빠뜨릴 수 있어. 우리도 사람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계속 부딪혀 가며 해결해야 해.”

276 작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지위란 칭찬에 흐르는 사랑을 표현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지위를 통해 우리는 한 집단의 소중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내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나의 존재를 기뻐한다는 확신을 갖는다. 낮은 지위, 혹은 냉대감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결국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거나 버려져 홀로 남겨지기 쉬운 취약성에 기인하는 셈이다.

325 우리의 판단은 어린 시절의 사랑과 욕구, 두려움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 기억들은 우리의 내면에 깊이 자리하면서 삶과 성취, 인생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의 근거로 작용한다. 결국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에 핵심을 이룬다.


posted by 드쏭
2019. 5. 1. 16:26 ◑ Got impressed/By books


한국어 제목은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제목 대로 100세 생일날, 창문을 넘어 도망친 한 노인의 이야기이다

이 노인은 100세까지 산만큼 다양한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는데 굉장히 스펙터클해서 그 에피소드를 풀어나가는게 한 이야기 축이고, 이 노인이 도망치는 현재의 내용이 다른 이야기이다. 이렇게 두 개의 큰 이야기를 한 챕터씩 번갈아가며 책이 전개된다

이 노인의 유년시절은 불우했지만 폭발물 다루는 기술을 배우게 돼서 전문가로 세계 여기저기를 여행하고,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의 대통령들과도 친분을 쌓게 되고 히말라야 넘고, 아무튼 에피소드는 모든 상상력이 동원된 것처럼 Fictional 하다

현재의 내용도 마약상?폭력집단의 주요 인물 세 명과 엮여서 어쩌다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다니면서 일어나는 내용이다


타임킬링용으로는 Okay, but 그에 비해 조금은 긴듯한 이야기. 에피소드 별로 다 설명하는데 그게 역사랑도 관련있고 해서 약간 루즈해지는 느낌도 있었다. 그래도 꽤 재밌었던 편





Things are what they are, and whatever will be will be.

→ So you don't need to worry much about the future.

 

Revenge is not a good thing. Revenge is like politics: one thing always leads to another until bad has become worse, and worse has become worst.

→ 나는 복수를 해본적이 없는 것 같은데, 전에 어떤 분이랑 얘기했을 때 그 분은 복수를 한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사소한 복수로.. 뭐 아무튼 항상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나도 눈물 날 일이 생기고, 할머니께서는 받기보다 주기를 더 많이 하라고, 나는 그냥 이렇게 감내하면서 복수는 안하고 살련다. 미..련..하게..?

 

If there was one thing he had learned it was that the very biggest and apparently most impossible conflicts on earth were based on the dialogue: “You are stupid, no, it’s you who are stupid, no, it’s you who are stupid.” The solution was often to down a bottle of vodka together and then look ahead.

→ 저렇게 양 쪽이 서로의 주장만 하면 결론이 날 수가 없다. 기분만 상하고. 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툭 터놓고 얘기해서 훌훌 털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갈등을 해결 짓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

 

He was not one to pin his hopes on what might happen in the immediate future. What happened happened. There was no point second-guessing it.

→ 작가의 인생관이 잘 드러나있다. 첫 문장과 비슷한 맥락에서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쿨~하게 현재를 살아가라는 그런..?

 

I don’t know, but as long as we think positively, I’m sure a solution will appear.

→ 나도 그렇게 믿고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며 살고 있지만 현실은 차갑네요.. 그래도 닥치는 대로 살다보면 길이 보이겠지요..?? Please


posted by 드쏭
2019. 4. 5. 11:21 ◑ Got impressed/By books

 

항상 생각, 심리에 관심이 있어왔고,

특히 눈에 보이는 것들, 즉 외형, 피상적인 것들만 중시하고 판단하는 집단 속에서 지쳐가는 요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고 사유하기 때문에 복잡한 동물이지만 짐승같은 면도 있음을, 감정에 휘둘리는 존재임을,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하는 생각들도 결국은 감정의 영향을 받는 것이고 감각이 인지보다 상위에 있다. 감정을 인지하는 순간 이미 현재의 시간은 지나간 것이므로 현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결국 자기 경험(직접이든 간접이든), 과거를 기반으로 생각하고 판단내리기 때문에 각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의 그 순간, 내 감정에 충실하고 삶에서 필연적인 후회라는 감정에 매달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이 책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내가 잘 이해했다면.

 

안그래도 순간의 감정에 내 마음이 너무 왔다갔다(?)하는 것 같아 평온함을 갖고 싶은게 몇년 전부터 나의 화두였지만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내 생각보다 나는 더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이고, 미술을 하기 위해서는 이 섬세함을 유지하고 순간의 감정을 잘 캐치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지만, 스트레스가 따라오기 때문에 힘들어진다는 것이 마치 양날의 검 같다. 다음주부터는 명상 프로그램에도 참여해보려고 하고 이렇게 생각, 심리와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려보려고 하지만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 책에 따르면 결국 내 생각은 감정에 좌우되는 것이 맞기에 순간에 느껴진 감정을 인식해서 그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생각 연습을 해야할 것 같다. 나의 건강을 위해, 내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아래는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실어보았다.

 

 

21 결혼식장에서 신부의 베일을 걷는 신랑의 손은 사랑의 두 번째 단계로 들어섰다는 신호다. 서로에게 결혼 이전에 보여준 행동, 마음, 그리고 들려준 약속이 허식이라는 것, 이젠 달라진다는 것, 지금부터 솔직하게 짐승이 된다는 것의 신호다. 이 달라짐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베일 속에서 상대를 보려 하면 사랑에 실패한다. 언제나 베일 뒤에 짐승 말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 결혼생활은 즐겁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예술작품이 된다. 그러므로 첫사랑이든 마지막 사랑이든 사랑의 환상과 아픔이란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감춘 베일의 거부하기 어려운 절대적 힘에서 온다. 그 힘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숭고한 목적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증오의 원천이 된다. 사랑은 숭고한 짐승이다. 보이는 것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것의 절대적인 힘, 아는 것 뒤에 숨은 모르는 것의 힘을 경험하기에 나는 겸손해진다. 사랑은, 생각하지 않는 그곳에서 내가 생각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미적 형식으로서 생각의 속임수를 잘 드러낸다.


36 하늘이 맑고 푸르면 공연히 기분도 밝아진다. 구름이 잔뜩 끼고 하늘이 잿빛일 때 나는 우울해진다. 비가 오면 빈대떡과 술 생각이 난다. 도대체 잿빛 하늘은 왜 우울한가. 하늘이나 대기가 우울하다고 느낄까. 비가 빈대떡 집이라도 차렸단 말인가. 아무 상관없다. 다만 내 마음이 밝고 우울하거나 술이 당기는 것이다. 울한 것도 내 마음이고 술 생각도 내 느낌이다. 사물 자체는 아무 의미를 띠지 않는다. 다만 사물과 내가 교우하고 그 소통에서 나온 감흥을 대상(사물)에게 덮어씌운 것이다. 나와 사물들은 나도 모르게 서로 통한다. 내 몸이 그들의 몸이고 내 머릿속 기억의 보관소도 그들과 같은 몸으로 이뤄졌기에 소통한다. 이상한 점은, 나는 그 이유를 알려 하지 않고 그저 잿빛 하늘이 우울하고 비가 술을 권하는 양 착각한다는 것이다. 사물은 내 몸 밖의 몸이고 내 몸은 내 몸 아닌 것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하이데거는 이렇게 표현했다. 생각한다는 것thinking은 사물이 행동하는 것thinging이라고.


50 언어는 몸의 기억과 만물을 정확히 재현하지 못한다. 사물은 언어를 넘어 무한히 변모하고 흐르지만 언어는 내가 유한한 만큼 불완전하다. 그것 역시 내 경험(기억)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경험의 귀로 듣고 내 경험의 혀로 말한다. 소통에는 언제나 여분이 있다. 말이 숨긴 감각, 그 속임수를 아는 한 나는 오해와 편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 텐데 이상하게도 말을 하는 순간 의미가 정확히 전달될 거라는 확신을 갖는다. 의식이 집중력이 감각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말은 외롭다. 감각은 언제나 몸으로 꿈을 꾸기 때문이다.


68 제임스는 말한다. 우리는 의식적인 자동인형들이라고We are conscious automata. 우리 선택이나 의지는 거의 다 자동적,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삶이란 매 순간 일어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하고 판단을 내리는 가운데 이뤄진다. 그런데 과거의 경험을 저장해놓지 않고 무슨 기준으로 인지하고 판단한단 말인가. 저축통장에 돈이 한 푼도 없는데 어디에서 잠을 자고 무엇으로 먹을 것을 마련하는가와 같은 물음이다. 마음은 기억의 저축이고 생각은 물질이다.


86 타인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속의 또 다른 나를 받아들이는 관용을 의미한다. 

 인간만이 시계를 보고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를 꿈꾼다. 그러다보니 현재가 증발한다. 아무리 매 순간을 즐기라고 해도 매 순간이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란 오직 ‘일정한 기간duration’으로만 존재한다. 회상 능력은 ‘내 속의 또 다른 나’라는 자의식이고 이 능력은 자동적이어서 지금 일어나는 일을 인식하거나 판단 내리는 데도 간섭한다. 아니, 과거의 경험이 없으면 현재 인지와 판단도 할 수 없다. 제임스는 이를 이정표에 비유했다. 경험하는 곳곳에 표지를 붙여놓아야 우리는 이 표지판에, 이정표에 의지해 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제 눈에 안경을 쓴 채 사물을 인지하고 판단한다.


103 생각이나 의지 속에는 이처럼 무의식이라는 에너지가 숨어 있다. 우리를 움직이는 동력은 생각이 아니라 그 밑에 억압된 감정, 감각, 정서다.


110 삶이란 신이 내린 오차를 실현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기억이나 생각의 오류가 일어나는 이유는 의식과 저장소라는 이중 구조뿐 아니라 뇌가 하늘보다 넓고 바다보다 깊기 때문이다. 기억을 인출하는 순간까지 계속 저장되는 경험들은 앞선 경험 위에 무한히 덧씌워진다.

 지휘자의 몸짓에 따라 여러 악기가 하나의 악보를 바탕으로 소리를 내는 것이 오케스트라다. 같은 맥락에서 의식은 지휘자다. 경험들은 커다란 프레임에 맞춰 선택하고 저장하며 인출한다. 어떤 특정한 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이렇게 건지는 것이 회상이다. 그러므로 과거는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주변의 여러 사물, 시간과 공간이라는 상황들, 그리고 감정에 둘러싸여 어우러진 과거다. 현재의 정서와 관계를 벗어나 순수한 과거의 경험을 고스란히 건질 수는 없다. 과거는 끊임없이 흐르고 변화한다.


155 경험의 흔적이 많이 쌓이지 않은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에는 주로 내일을 더 많이 생각하고, 경험의 잔고가 넘치게 쌓인 노년에는 어제를 그리워하며 산다. 내 생각과 판단에서 현재는 빠져 있다. 현재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할 때도 과거 경험의 눈으로 읽기 때문에 시차에 의해 판단과 인식이 달라진다. 같은 사람도 오래전에 볼 때와 지금 볼 때 다르게 여겨지고 같은 책도 시간이 흐르면 달리 읽힌다. 지금 볼 때 다르게 여겨지고 같은 책도 시간이 흐르면 달리 읽힌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뉴턴식의 직선적인 시간 개념은 실제 경험에서는 곡선이다. 의식의 진화로 인해 현재의 시간은 증발하고 과거와 미래의 두 지점을 오가는 곡선을 만들면서 우리는 살아간다.


160 소설가나 철학자들은 순간을 놓치지 말고 현재를 열심히 살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 실천하기 불가능하다. 가능한 실천이 아니기에 줄곧 충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에게 의식만 있다면, 아니 동물처럼 습관적 기억만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느 한쪽만 있으면 문제 해결이 쉽다. 그러나 경험하는 시간에서 현재란 없다. 현재는 지각하는 순간 이미 지났다. 울기에 슬픈 것과 마찬가지고 뇌에서 감각의 뉴런들에는 이미 불이 반짝 들어왔고 다음 순간 의식이 작동하기에 지금이라고 느낀 순간 이미 그 시간은 지난 것이다.


167 깨달음일지라도 그것에 매달리지 마라. 세상은 덧없고 무상하기에 하나의 지식에 매달리면 많은 경험을 하지 못한다. 두려움 없이 경험하는 것, 모든 대상에서 얻는 것은 순간의 인상일 뿐이며 외형과 인상이 우리가 잡을 수 있는 전부다.


168 생각은 그것이 깨달음일지라도 매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감각은 새로운 생각을 낳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해야 했다는 후회조차 흘려보내야 할 어제의 일인 것이다. 삶은 늘 후회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 후회에 매달리지 않는 것이 지혜다. 오늘의 후회는 내일의 축복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후회에 강박적으로 매달리지 않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후회스러운 일이 의외로 이후 축복이 됐음을 알게 된다.


170 어떤 길을 택하든 후회는 따른다. 가지 않은 길은 현실의 불만을 메꾸는 수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후회에 매달리지 않고 계속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판단과 생각은 물처럼 끝없이 흐르고 변화한다. 후회는 삶의 본질이다. 우리는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과 사유의 흐름 속에 발을 딛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어떤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미래의 어느 순간에 불쑥 나타난다. 그것이 시간이다.


193 시간 역시 강물처럼 흐른다. 젊은 시절에는 몸이 빠르기에 강물의 흐름보다 더 앞서나간다. 시간이 몸보다 느리며, 그래서 시간이 길다고 느낀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몸이 느려지면서 강물의 흐름을 따르지 못한다. 그러니 시간이 나를 두고 저만큼 빨리 달아난다고 느낀다. 조금 사는 것이다. 그러면서 반대로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들기에 의식은 조급해진다. 감지하는 시간이란 이처럼 상대적이고 마술적이다.

 시간은 경험의 방식이다. 후회는 반복되고 미래는 예상하지만 결코 그대로 실현되지 않는다. 회상과 예상은 현재라는 텅 빈 공간을 채운 꿈이며 희망일 뿐이다. 착각은 필연적인 요구다. 그러므로 후회가 삶의 본질임을 모르면 후회에 매달려 삶의 시간을 놓쳐버리게 된다.


225 그렇다면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 감정은 무엇일까. 두려움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기에 느끼는 두려움은 언제 포식자에게 먹힐지 모른다는 원시적 두려움에서 출발한다. 공포는 살아남기 위한 동물적 본능이다.


231 개인마다 기억이 다른 만큼 생각도 다르다. 또한 환경과 나이에 따라 경험도 다르다. 문제는, 나는 내 생각으로 세상을 보고 타인을 본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살 수 없고 이것이 내가 실수를 하면서 살아가는 이유다. 경험의 차이를 잊고 내 위치에서 대상을 판단하며 결정할 수밖에 없는 한계다. 그래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부모나 스승, 친구로부터 조언을 구한다. 이것은 실수를 줄이기 위해 필요하다. 반면 애착이 강할수록 자기 눈으로 아이를 보고 자기 소망과 생각을 불어넣는다. 원래 한 몸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이라고 착각하면서 자기 경험에서 나온 충고를 들려준다. 물론 자식은 이를 잘 이해할 수 없다. 경험이 다르고 아직 겪어본 적이 없어 의식으로는 옳은 것 같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246 프로이트는 우울증의 원인인 자기 비난이 대개 다른 사람보다 더 정직하고 양심적인 사람에게 잘 일어난다고 말한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을 나무라지 말고 긍정하며 하던 일을 꾸준히 해 좋은 결과로 앞의 나쁜 경험을 덧씌우는 것이 좋다. 결국 자신감의 상실에서 나타나는 증상이기 때문에 더 좋은 일로 나쁜 기억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한번 경험한 것은 몸에 새겨지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지만 충격이나 분노와 수치심의 강도는 낮아지고 점차 떠오르는 빈도수가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치유법이다. …… 우리 마음은 물처럼 흐르고 뇌는 감정과 의식이라는 이중 장치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계절이 바뀌듯이 자연스럽게 다른 경험들을 쌓는 것이 좋다. 제임스가 말했듯이 자연스러운 망각은 신의 축복이다.

 겨울과 여름이 교차하면서 음양의 조화로 자연이 순환하듯이 인연과 악연은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 상처에 집착하고 매달리지 않는 한, 상처가 있으면 반드시 치유도 있기 마련이다.


248 그는 우리가 인연을 잘 만들고 업을 잘 쌓으면 된다고 말한다. ‘자업자득’이라는 말처럼 업이란 좋은 경험을 쌓는 일이다. 깨달음은 지혜이고 깨달음을 얻으면 삶과 죽음의 차이가 없어진다. 진정한 나는 없다. 나무가 나무 아닌 것으로 만들어지듯이 나는 ‘나 아닌 것’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물질이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내 몸이 몸 밖의 몸으로 돌아가는 것, 작은 몸이 큰 몸과 하나 되는 고향 가는 길이다.

 “여름에는 여름옷을 입고 겨울에는 겨울옷을 입지요.” 답은 그저 바로 눈앞에 있는데 우리는 이리 저리 깊이 생각하며 미혹에 빠진다. 하이데거는 테크놀로지의 지나친 발달을 우려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멀리 가는 기술의 발달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한다. 감각을 되살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을 볼 줄 아는 지혜란 무엇인가. 바로 내 마음(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대자연의 은총과 같다는 것을 깨닫는 길이다.


277 공감은 무의식 차원에서 네가 느끼는 것을 나도 느끼고 의식 차원에서 내 판단이 개입되는 두 단계의 합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경험에 따라, 시간과 공간에 따라 공감의 정도가 달라진다. 반면 동정은 교육의 힘에 의해 타인의 고통에 가엾음과 연민pity을 느끼는 것이다. 주로 의식 차원에서 이뤄지고 시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공감은 소설의 주인공과 자발적을 동일시하고 난 후 시간이 흐르면 거리를 두고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동정은 도덕적 감정으로서 범위가 좁다. 가장 큰 차이는, 공감은 원초적으로 자아와 타인의 합일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내가 타인의 입장이 되는 것이므로 자아를 대상에 투사한다. 그런 뒤 타인과 거리를 두고 그를 인정하며 이해한다. 같으면서 다른 것이다. ‘나’라는 개인이 사회적 동물이 되는 이중 장치다. 그러나 동정은 대상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불쌍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아를 타인에 투사하지 않는다. 


342 의식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 뒤로 간다. 아니 뒤로 가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현재를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오직 하나의 기간으로서 현재가 존재할 뿐이며 이것을 소중히 다뤄야 한다. 그냥 부딪히는 현실을 무조건 성실히 최선을 다해 사는 길 외엔 없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비전은 그저 현실을 견디는 수단일 뿐 모두 참모습이 아니다. 삶은 ‘영원한 현재’다. …… 심리는 몸 그 자체다. 객관적인 지식이 아니라 그동안 몸에 쌓인 경험의 정보가 몸에 즉시 반응하는 것이다.

posted by 드쏭
2019. 3. 4. 13:14 ◑ Got impressed/By books

2016년 영화 Me Before You의 후속작품 소설

약 400페이지로 페이지수는 길었지만 미 비포 유의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아무래도 미 비포 유를 봐서 배경 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읽은터라 더 흥미가 있었다. 약간은 억지로 짜맞춘 듯한 설정도 느껴졌지만 (Will의 유언과 가치관을 강조하기 위해) 재미는 있었다. 주인공인 Louisa가 다른 사람 인생을 돌보다가 자기 인생을 뒤로 할 뻔 했는데 다시 자기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성장 스토리. 다른 사람 사연들이 많이 나올 수 밖에 없었는데 Lou와 다른 사람 얘기가 섞여서 이렇게 길어지게 된 것 같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게 잘 풀어낸 것 같다. 전반적인 영어 수준도 문장의 길이가 길지 않고 단어들도 어려운 단어는 별로 없어서 쉽고 빨리 읽힌다. 거의 informal한 단어들 위주고 표현들도 고전 소설처럼 어렵지가 않다.

3/1, 3/2 몸이 안 좋은 틈을 타 침대에 기대 이 책을 독파했다 ㅋㅋ

미 비포 유를 재미있게 본 사람들 중 타임 킬링용 소설을 찾는 사람들에게 추천



385

Lou, I don't know what will happen. Nobody ever does. You can set out one morning and step in front of a motorbike and your whole life can change. You can go to work on a routine job and get shot by a teenager who thinks that's what it takes to be a man.

Or you can go to visit a bloke wearing a nightie in a hospital bed and get the best job offer you can imagine. That's life. We don't know what will happen. Which is why we have to take our chances while we can. And... I think this might be yours.


posted by 드쏭
2019. 1. 11. 12:02 ◑ Got impressed/By books


12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디자인이나 단순한 기술 하나가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삶들의 바탕색을 회색에서 파랑으로 바꾸었다.

 ‘누군가의 고통에 눈길을 포개는 이들의 섬세한 뜨거움’


49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인이 있어야 사람은 그 다음 발길을 어디로 옮길지 생각할 수 있다. 자기에 대해 안심해야 그 다음에 대해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51 네가 옳다’는 타인의 확인이 필요한 건 이렇게 자기 자신도 전적으로 자기 편이 돼주기 힘들기 때문이다.


57 내 가치관이나 신념, 견해라는 것은 알고 보면 내 부모의 가치관이나 책에서 본 신념, 내 스승의 견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감정은 오로지 ‘나’다.


68 고급 정장에 계급장이나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 있을 때 나를 주목하고 인정해 준 사람보다 내가 맨몸이었을 때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극진히 보살펴 준 사람은 뼛속에 각인된다. 내 존재 자체에 반응한 사람이니 그 사람만이 내 삶에 의미있는 사람이 된다.

 그런 사람을 만나야만 사람은 존재의 근원적인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존재의 근원적 불안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래야 살아갈 힘의 최소한의 안정 기반을 만들 수 있다.


80 사람들은 누가 죽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그 마음에 대해 자세히 묻는 것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라 여긴다. 아니다. 정반대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이 가장 절박하게 원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심각한 내 고통을 드러냈을 때 바로 그 마음과 바로 그 상황에 깊이 주목하고 물어봐 준다면 위로와 치유는 이미 시작된다. 무엇을 묻느냐가 아니고 나에게 집중하고 나의 마음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치유이기 때문이다.


105 그런 감정들을 떠올리고 얘기할 수 있다면 그것이 존재 자체에 대한 얘기다. 내 상처의 내용보다 내 상처에 대한 내 태도와 느낌이 내 존재의 이야기다. 내 상처가 ‘나’가 아니라 내 상처에 대한 나의 느낌과 태도가 더 ’나’라는 말이다.


109 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먹먹하게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 있으면 사람은 산다.


127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하면서 으레 던지는 “힘들었겠다”는 말은 사람 마음에 의미 있게 가닿지 않는다. 공감적인 단어이지만 공감받았다는 느낌을 상대에게 주지 못하는 건 그 말이 잘 모르고 던지는 말이라서다. 자세히 모르는 사람이 던진 말이 의미 있는 정서적 파장을 만들지는 못한다.


141 공감은 그저 좋아 보이는 외형에 대한 지지와 격려의 반응이 본질이 아니다. 존재 자체에 대한 주목이어야 하고 그럴 때만이 그 위력이 오롯이 나타난다.


168 감정은 항상 옳지만 그에 따른 행동이나 판단까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감정은 언제나 공감할 수 있지만 그의 행동이나 판단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217 우리는 은연중에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이 따로 있다고 여긴다. 좋은 감정은 수용하지만 나쁜 감정이라 믿는 것은 없애거나 억누르려 한다. 후회나 짜증, 무기력, 불안, 두려움 같은 것은 나쁜 감정, 없애야 하는 감정이고 유쾌하고 잘 웃는 마음, 매사 긍정적이고 좌절하지 않는 마음은 좋은 감정이다. 북돋우고 강화시켜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나쁜 감정을 어떻게 해서라도 좋은 감정으로 전환시킬 수 있어야 멘탈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는 건 좋은 일인가. 좋을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얼마든지 있다. 때론 위험하기도 하다. 긍정적 감정은 자기 합리화와 기만이 만들어내는 결과일 때도 있고 자기 성찰의 부재를 뜻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성찰이 깊고 스스로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면 불안하고 흔들리게 된다. 상황을 더 깊고 입체적으로 보는 과정에서 만나는 불안은 불가피한 것이다. 깊은 성찰은 여러 갈래의 길과 전망을 보여준다. 복잡한 갈래 길들을 바라보며 인정하고 통합하는 과정은 불안을 전제로 진행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심리적 토대는 더 튼실해진다. 이럴 때의 불안은 건강한 불안, 건강한 혼란이다. 입체적 통합을 위한 필수 과정이다. 건강한 불안을 외면하면 이 모든 과정이 생략되고 사라진다. 좋은 감정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듯 부정적인 감정도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상황마다 다르다. 고정값이 아니므로 개별적 상황마다 다시 성찰해야 알 수 있다.


219 감정은 판단과 평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내 존재의 상태에 대한 자연스런 신호다. 좋은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내 감정은 항상 옳다.


226 사랑하는 사람들일수록 공감에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사람은 더 많이 오해하고 실망하고 그렇게 서로를 상처투성이로 만든다. 서로에 대한 정서적 욕구, 욕망이 더 많아서 그렇다.

 옆집 사는 이웃에게는 친절하고 배려심 있게 대해도 내 배우자에게 그렇게 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 어렵다. 남에게는 특별한 기대나 개인적 욕망이 덜해서다. 그러나 내 배우자나 가족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로부터 받고 싶은 나의 개별적 욕구와 욕망이 있다. 그 욕구만큼이나 좌절과 결핍이 쌓인다. 그래서 배우자나 가족에겐 너그럽기가 더 어렵다.


227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건 이런 욕구와 욕망이 채워지지 않고서는 삶이 1밀리미터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아서다. 서로의 사랑에 대한 욕구를 지겨워하지 않고 비난하지도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 채 기꺼이 공급하며 공급받는 일은, 우리 모두가 자기 삶의 동력을 마련하는 일이다. 미룰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다. 휘발유나 전기의 도움 없이 굴러가는 차는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232 계속 바꾼다는 건 흔히 생각하듯 게으르거나 끈기가 없어서만은 아니다. 자기를 찾기 위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고민 속에는 ‘왜 나는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오래 하지 못하는 걸까?’라는 생각도 늘 함께 들어 있다. 사람은 그런 존재다. 당사자는 그런 자신에 대해 남보다 더 많이 자책하며 생각한다. 그러니 “나중에 후회하거나 힘들다고 하지는 마라” 은 강요는 아이의 퇴로를 막고 철창에 가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238 아무리 훌륭한 말이어도 일방적인 계몽과 교훈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아무리 옳은 말이어도 듣는 이에게 강박 관념으로 남거나 상처만 주고 튕겨 나가는 경우가 더 많다. 그저 겉보기에 좋은 말일 뿐이다.


267 공감은 내 생각, 내 마음도 있지만 상대의 생각과 마음도 있다는 전제 하에 시작한다. 상대방이 깊숙이 있는 자기 마음을 꺼내기 전엔 그의 생각과 마음을 나는 알 수 없다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관계의 시작이고 공감의 바탕이다.


282 상처를 떠올리고 말해서 힘든 게 아니라 내 상처가 거부당하는 느낌,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아픈 것이다. 상처를 말하는 일이 더 큰 고통과 상처로 이어졌던 경험 때문에 힘든 것인데, 그걸 상처를 얘기하는 것이 당사자를 더 아프게 하는 것이라고 오판한다. 반복하자면 아팠던 얘기를 다시 꺼내는 게 고통스러운 것은 그 얘기가 외면당하고 공감받지 못해서다. 거기에 더해 내 고통이 충조평판의 대상으로 전락할 때다.


291 누군가의 마음은 타인이 옳다 그르다 판단할 영역이 아니다. 마음과 느낌은 충조평판의 대상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존재의 고갱이다.


294 공감이란 나와 너 사이에 일어나는 교류지만, 계몽은 너는 없고 나만 있는 상태에서 나오는 일방적인 언어다. 나는 모든 걸 알고 있고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들이다. 그래서 계몽과 훈계의 본질은 폭력이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렇다.


295 누군가의 속마음을 들을 땐 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충조평판의 다른 말은 ‘바른말’이다. 바른말은 의외로 폭력적이다. 나는 욕설에 찔려 넘어진 사람보다 바른말에 찔려 쓰러진 사람을 과장해서 한 만 배쯤은 더 많이 봤다. 사실이다.


301 고통을 손가락 지시로 덜어낼 수는 없다. 체중을 실어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하는 일은 ‘심리적 참전’이라 할 만큼 에너지 소모가 필요하다. 당연하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덜어내는 일이므로.




IQ(Intelligence Quotient)에서 EQ(Emotional Quotient aka Emotional Intelligence)로, 단순히 지능지수가 높은 사람이 아닌 감성지수/공감지수가 높은 사람에 주목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AI의 기술이 점점 더 발전하면 할수록,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가진 고유의 능력이 더 요구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공감이란 무엇일까?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공감은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이다.(Naver 사전한가지공느낄감, 즉,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이 공감에 대한 통념일 것이다.

그렇다면 타인을 잘 이해하고 타인의 감정을 내 감정처럼 느끼는 일이 잦다면 공감을 잘하는 사람,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이라고 보면 될까. 물론 전혀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들보다 공감능력이 높은 것은 맞겠지만 공감이라는 것이 이렇게 단순히 지수로 측정될 수 있는 능력인가에 대한 의문은 든다. 공감지수라기보다는 이성보다는 감성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더 큰가 아닌가 하는 경향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책을 읽은 후라 이런 생각이 든 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통해 확실히 내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공감'이라는 개념을 확장시키고 깊게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공감'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더 조심스러워졌고, 나도 나름 공감을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감정이입은 잘 하는 것 같은데 어떤 말이나 반응을 해줘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는 편이라.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아서 건네는 말이 듣는 상대방의 마음에 가닿지 않으면 메아리처럼 허공에서 울릴 뿐이라는 것, 나름 머리를 짜내서 한 말이지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 최근에 나도 누군가로부터 이러한 이유로 상처를 받았던 것이 떠올랐다. 앞으로는 주변 사람들과 대화할 때 함부로 충조평판 하지 않도록 명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은 날씨와 같다는 말,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내가 느끼는 감정이 곧 '나'이고 '옳다'는 말, 그 밖에도 현재 또는 과거의 내 상황과 비슷한 사례들을 읽으며 내 마음이 어루만져지는 느낌을 받았다. 버스 안에서 읽다가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비록 가족과 친구 중에 진정한 공감자가 없는 것 같다고 느끼지만, 내 상황 자체를 이해하고 들어주는 '두 사람'이 있어서 버텨나갈 수 있는 요즘. 공감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두 사람의 존재 자체가 큰 힘이 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현재는 심리적인 안정에 도움을 받고 있지만 훗날 이렇게 정기적으로 만날 수 없게 되고 자립해야 하는 날이 온다면 잘 버틸 수 있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괜한 걱정이고 서로에게 공감하며 서로의 존재 자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아직까지는 가져본다.


최고의 공감 및 지지의 표현 : "당신은(의 마음은) 옳다. (무조건)"


posted by 드쏭
2018. 12. 13. 11:22 ◑ Got impressed/By books


맞다, 제목에 끌려서 집었다.

절대로 굶어 죽지 않는다고 이렇게 단언하다니.

과연 말도 안되는 논리를 주장할지 아니면 독자들을 설득시킬지 궁금해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설득당했다.

아니,

믿고 싶다.

이 책에 나온대로 참을성을 가지고 노력하면서 내 작업을 조금씩 알려나간다면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우리 가족과 친구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술가는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알고 있는 그 통념에서 나는 예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물론 성공에는 나 자신의 노력과 참을성이 필수 요소이겠지만 분명 운과 타이밍이라는 것이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선 이 세상에 수많은 예술가 중 누구는 빛을 보고, 누구는 살아 생전 빛을 보지 못하는 그런 상황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빛을 보지 못한 예술가 모두가 이 책에 나온 굶어 죽는 예술가의 태도와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어느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을 보면서 요즘 고민 중 하나인 자기 포장의 기술에 대해 또 느꼈다. 원래 체, 척 하는 걸 안 좋아하고,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다보니 내 실력을 제대로 활용하고 홍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실력이 출중하지 않더라도 SNS나 어떤 매체를 통해 홍보를 잘해서 빛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 아마 내 스스로의 기준이 높아 나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고, 훈련이 더 필요해 하면서 작업을 공개할 자신감이 부족한 것이 그 원인일 터. 하지만 셀프 홍보 시대가 아닌가. 특히 나는 어떤 네트워크에 속해있는 것이 아니므로 내가 나 자신을 알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걸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해나갈 것인가를 고민 중.




37 대부분이 자아실현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보다 인생에서 연기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튀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을 따르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42 창작을 위한 첫걸음은 그런 것이다. 도약하거나 어느 날 갑자기 발현하는 것이 아닌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음 단계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작은 결정을 의미한다. 물론 어떤 이들은 모든 것을 걸고 결국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리고 그런 식의 성공은 바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 반대의 경우, 거의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작은 일을 점진적으로 해나갈 때 더 지속 가능한 성공을 거둘 수 있곤 하다.


56 모든 프로 예술가는 알지만 아마추어 예술가는 모르는 비밀이 있다. 바로 독창성이 과대평가를 받는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사람은 특출하게 창의적인 것이 아니다. 이들은 그저 재배열에 강할 뿐이다. 이를 위해 자기가 받은 영향을 잘 파악해야 한다. 훔치기 전에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 예술가가 되기 전에 도둑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우선 학생이 되어야 한다.

65 창조성은 훔치는 데서 시작되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창작은 과정이 올바르다면 흥미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그때가 되면 다른 이들은 당신의 결과물을 훔치려 들 것이다. 그때 비로소 당신은 과업을 마쳤다는 것을 안다. 더는 도둑이 아닌 도둑질을 당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71 굶어 죽는 예술가는 자기에게 올 결정적 기회를 기다린다. 잘나가는 예술가는 기교를 연마하는 수습생이 된다.

72 수습생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해야할 일이라면 무엇이든. 이것이 정답이다. 수습생이 되는 것은 선택이며 오늘 당신이 연습하기 시작해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 좋은 수습생에게는 참을성과 인내, 그리고 겸손함이 있다.


82 알맞은 시기라는 것은 없어요. 마침내 배우가 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타당해졌을 뿐이죠.”


88 도전에 맞서 맹렬히 노력하고 계속되는 실패와 역경, 부진함에도 오래도록 노력과 열정을 유지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릿이 충만한 사람은 무엇인가를 성취하려고 마라톤처럼 접근한다. 그 사람의 강점은 체력이다. 실망이나 지루함이 누군가에게는 경로를 바꾸고 손을 떼야 할 때라는 신호가 되지만, 그릿이 충만한 사람은 끝까지 버텨낸다.”


97 우리는 예술가가 고집스럽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리고 분명 예술가는 고집쟁이다. 그러나 이것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고집스러움은 예술을 생계와 연결할 때 필수 요소가 된다. 당신이 전략적으로 고집을 부리는 것은 세상에 당신의 작업을 신뢰해도 되는 한 가지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다.


123 일반적으로 창작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예술가의 천재성을 매우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천재성이 엘비스 같은 가수를 록스타로 만들어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후원자 없이, 재능을 지원해줄 사람 없이, 대부분의 창작은 그다지 널리 퍼져나갈 수 없다. 창작은 팀 활동이다. 예술가와 후원자, 가수와 제작자, 배우와 매니저가 한 팀을 이룬다. 한 명에게는 재능이 있고 다른 한 명은 지지자가 된다. 그렇다. 예술가에게는 후원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때로 간과하는 사실은 후원자 역시 예술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134 네트워크 없이 창작은 성공할 수 없다. 올바른 네트워크에 노출되는 것은 성공을 당길 몇 안 되는 일이다.


172 우리는 모두 누군가와 공명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예술은 애호가가 필요하다. 굶어 죽는 예술가는 조용히 혼자 일하면서 이를 추구한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발견되길 남몰래 바라면서 말이다. 이 예술가는 관객의 필요성을 일축하고 대신 홀로 고통받기를 선택한다. 그러면서 누군가 자신이 천재인 것을 우연히 발견해줄 행운의 순간을 기다린다. 반면에 잘나가는 예술가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 , 공개적으로 작업하면서 자신의 작업을 공유한다. 추잡해지거나 자기 홍보에 집착하는 대신 그저 사람들에게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190 돈을 버는 행위는 우리 작업에 존엄성을 부여한다. 우리가 세상에 내놓는 존재를 정당화해준다. 그리고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한다.

194 돈은 당신이 전문가라는 것을 확인해준다는 이유만으로 예술가가 되기 위한 과정 일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돈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당신의 몫이다.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대할지는 당신이 정하는 것이다. , 당신은 당신의 작품이 돈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어야 한다.


250 우리는 돈을 위해 예술을 하지 않는다. 더욱 활발히 예술 활동을 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다.




아주 공감이 가는 250페이지에 적혀있는 글귀. 바라는 것은 많지 않은데. 그저 내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될 수 있다면, 그래서 생계와 관련된 큰 걱정없이 작업에 매진할 수 있다면, 그 뿐인데. 이게 너무 큰 바람인 것일까.

공감가고 내 스스로에게 되새겨야할 글들이 많아서 영어 버전인 Real Artists Don't Starve를 사서 가끔씩 펼쳐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굶어 죽지 않고 작업하는데 부족하지 않을 만큼 돈을 벌 방법을 찾을 것이다. 꼭! 그 방법이 내 작업 또는 예술과 관련된 무언가가 되는 그 날이 너무 멀지 않게 오기를. 그 날까지 지치지 않고 작업을 놓지 않고 계속 해나갈 수 있기를.


posted by 드쏭
2018. 10. 22. 15:57 ◑ Got impressed/By books

아는 언니의 추천을 받아서 읽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계나'로 금융회사에서 3년을 일하다가 한국이 싫어서, 못 살겠어서 호주 워홀을 결정하고 떠나는 이십대 중후반의 여성이다. 같은 성별이라서 그랬을까, 내가 호주를 갔던 시기랑 비슷해서였을까, 소설 속에 마치 나의 경험을 적어놓은 듯 공감이 가고 추억이 떠오르면서 웃음이 나왔다. 문체도 인터넷 소설(?)처럼 가볍게 적혀있어서 쉽고 금방 읽히면서 재미있었다. 가벼운 형식이지만 메시지가 담겨있는 그런 책이었다. 아마 고민이 많은 대학교 고학년, 취준생, 직장인들이 읽으면 그 고민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120  사실 지루한 얘기는 두 가지뿐이었어. 은혜 시어머니 이야기, 그리고 미연이 회사 이야기. 그런데 은혜랑 미연이 그 두 얘기를 너무 오래 하는 거야. 몇 년 전에 떠들었던 거랑 내용도 다를 게 없어. 걔들은 아마 앞으로 몇 년 뒤에도 여전히 똑 같은 얘기를 하고 있을 거야. 솔직히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없는 거지. 걔들이 원하는 건 내가 “와, 무슨 그럴 쳐 죽일 년이 다 있대? 회사 진짜 거지같다. 한국 왜 이렇게 후지냐.”라며 공감해 주는 거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냐. 근본적인 해결책은 힘이 들고, 실행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니까. 회사 상사에게 “이건 잘못됐다.”라고, 시어머니에게 “그건 싫다.”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가 무서운 거야. 걔들한테는 지금의 생활이 주는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이 너무 소중해.

- 그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을 뒤로 하고 상황을 바꿀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상황과 주변 탓만 하고 있는 것이다 라는 말에 매우 공감한다. 그렇게 불만이고 마음에 안 들면 해결을 하면 되는 것이다.


160  “똑같이 하와이에 왔다고 해도 그 과정이 중요한 거야. 어떤 펭귄이 자기 힘으로 바다를 건넜다면, 자기가 도착한 섬에 겨울이 와도 걱정하지 않아. 또 바다를 건너면 되니까. 하지만 누가 헬리콥터를 태워 줘서 하와이에 왔다면? 언제 또 누가 자기를 헬리콥터에 태워서 다시 남극으로 데려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그런 면에서 나는 파블로보다 형편이 나아. 파블로는 바다를 건너다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었어.(아무리 펭귄이 헤엄을 칠 줄 안다지만, 그래도 근본은 새잖아.) 하지만 내가 호주에서 산다고 해서 죽기야 하겠어? 기껏해야 괜찮은 남자를 못 만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사는 거지. 그런데 호주에서는 알바 인생도 나쁘지 않아. 방송기자랑 버스 기사가 월급이 별로 차이가 안 나.

...

몇 년 전에 처음 호주로 갈 때에는 그 이유가 ‘한국이 싫어서’였는데, 이제는 아니야. 한국이야 어떻게 되든 괜찮아. 망하든 말든, 별 감정 없어……. 이제 내가 호주로 가는 건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야. 아직 행복해지는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호주에서라면 더 쉬울 거라는 직감이 들었어.

- 마치 최근 내가 했던 생각을 적어 놓은 것 같다. 내 생각을 어머니께 말씀 드렸을 때 어머니께서 그거 안되면 어떻게 할거냐고 하셨고, 나는 안될거 생각하고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씩씩한 척 했지만 물론 나도 두렵고 불안하다. 하지만 두려워만 하고 있으면 변화를 위한 행동을 할 수 없고, 그러면 나중에 그 행동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과 후회로 괴로워질 것 같다.

행복해지는 방법을 잘 모른다는 계나와 달리, 나는 호주 생활과 그밖의 경험을 통해 언제, 어떤 것을 통해 행복함을 느끼는지 조금은 안다. 행복을 느끼는 여러 순간들 중에 그 행복감이 오래 지속되면서 강도가 큰 그 활동이 나의 삶에서 보다 더 많은 파이를 차지할 수 있도록, 즉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소망하면서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 이게 맞는건지 아닌지 밑바닥에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고, 이것을 추구함으로써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그렇지만, 이걸 하지 않는다면 그 후회가 너무 클 것 같아서,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나중에 4,50대가 되었을 때 지금의 결정을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때까지 산다는 100% 보장은 없지 않나 라며 내 결정에 대한 근거로 삼으면서 마음을 다 잡는다.



184  밥을 먹는 동안 나는 행복도 돈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 거야. 어떤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 데서 오는 거야. 그러면 그걸 성취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서 사람을 오랫동안 조금 행복하게 만들어 줘. 그게 자산성 행복이야. 어떤 사람은 그런 행복 자산의 이자가 되게 높아. 지명이가 그런 애야. ‘내가 난관을 뚫고 기자가 되었다.’는 기억에서 매일 행복감이 조금씩 흘러나와. 그래서 늦게까지 일하고 몸이 녹초가 되어도 남들보다 잘 버틸 수 있는 거야.
어떤 사람은 정반대지. 이런 사람들은 행복의 금리가 낮아서, 행복 자산에서 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런 사람은 현금흐름성 행복을 많이 창출해야 돼. 그게 엘리야. 걔는 정말 순간순간을 살았지.
여기까지 생각하니까 갑자기 많은 수수께끼가 풀리는 듯 하더라고. 내가 왜 지명이나 엘리처럼 살 수 없었는지, 내가 왜 한국에서 살면 행복해지기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나는 지명이도 아니고 엘리도 아니야. 나한테는 자산성 행복도 중요하고, 현금흐름성 행복도 중요해.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 나한테 필요한 만큼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하기가 어려웠어. 나도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지. 나는 이 나라 사람들 평균 수준의 행복 현금흐름으로는 살기 어렵다, 매일 한 끼만 먹고 살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는 걸.

미연이나 은혜한테 이런 걸 알려 주면 좋을 텐데. 걔들은 방향을 완전히 잘못 잡고 있어. 시어머니가 자기 회사를 아무리 미워하고 욕해 봤자 자산성 행복도, 현금흐름성 행복도 높아지지 않아.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 자기 행복을 아끼다 못해 어디 깊은 곳에 꽁꽁 싸 놓지. 그리고 자기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야. 집 사느라 빚 잔뜩 지고 현금이 없어서 절절 매는 거랑 똑같지 뭐.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남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해. 가게에서 진상 떠는 거, 며느리 괴롭히는 거, 부하 직원 못살게 구는 거, 그게 다 이 맥락 아닐까? 아주 사람 취급을 안 해주잖아.
난 그렇게 살지 못해.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고.
정말 우스운 게, 사실 젊은 애들이 호주로 오려는 이유가 바로 그 사람대접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접시를 닦으며 살아도 호주가 좋다 이거지. 사람대접을 받으니까.
그런데, 그 근성 못 고치면 어딜 가도 똑같아. 호주에 와서 교민이 유학생 무시하고 유학생이 워홀러 무시하는 식으로 이어져. 그 근성 고치려면 자산성 행복을 좀 버리고,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해야 해.

- 보다 사람다운 대접을 받기 위해서. 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작품 해설)

200  마지막에 그녀는 한국에서 출국해 호주로 귀국하며 “난 이제부터 진짜 행복해질 거야.”라고 다짐한다. 이쯤에서 계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야겠다. 나는 그녀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확신한다. 뭔가를 성취한 기억으로 조금씩 오랫동안 행복감을 느끼는 ‘자산성 행복’이든, 어떤 순간 짜릿한 행복감을 느끼는 ‘현금흐름성 행복’이든, 효율성의 잣대로 손익을 계산하는 한 계나는 행복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동생 ‘예나’가 사귀는,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한다는 남자 친구를 평가하는 그녀를 보라. 계나는 본인이 여태껏 냉소적으로 비판하던 사람들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그녀는 쉽게 행복해지기 위해 호주 이민을 단행했다고 말한다. 솔직하고 구체적인 속내는 이렇다. “내가 호주에 간 것은 내 신분이 오를 가능성이 있는 방향으로 한 일이야.” 지명의 가족에게서 신분 차이의 굴욕을 절감했으므로, 계나는 신분 상승이야말로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라고 신봉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경제적 감각에 침윤된 관점이 변하지 않으면 그녀는 틀림없이 불행해진다.

앞에서 나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서의 탈출을 꿈꾸고 결단해야 한다고 썼다. 탈출은 어디인가로 도피하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상 한국 사육장의 외부에서 외국 사육장이 있을 따름이다. 달아나도 가축으로밖에 생존할 수 없다. 언어와 문화가 상이할수록 그렇게 살 확률은 커진다. 그렇다면 진정한 탈출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육장 내에서 가축이라는 포박을 풀어내는 데 달려 있다. 사육 이데올로기를 온몸으로 거부하고, 사육장의 주인을 쫓아내야 한다. 계나는 반문할 것이다.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서 이기는 게 멋있다는 건 나도 아는데……. 그래서, 뭐 어떻게 해? 다른 동료 톰슨가젤들이랑 연대해서 사자랑 맞짱이라도 떠?” 나는 답변할 것이다. “톰슨가젤들이랑 사자랑 맞짱뜨자는 게 아니야. 톰슨가젤들이랑 사자랑 연대해서 우리를 부숴버리자는 거지.” 이것이 사육장 너머를 지향하는 내가 최종적으로 도출한 방안이다. 입때껏 계나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난 당신의 견해가 궁금하다. 자, 담화를 시작해 보자.

- 내 마음의 아주 깊은 밑바닥에는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가 있는 것은 아닐까 꼬집힘을 당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분 상승은 뒤따라 오면 좋은 것이고 아님 말고. 그게 최우선으로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우리를 부순다는 말. 그게 지금의 사회를 바꾸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방향이긴 하겠으나, 어떻게 연대를 해야할지, 혼자 노력한다고 연대가 되는 걸지, 사실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약간의 뜬 구름 같아 보여서. 뜬 구름이 아닌 나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려고 하는 것이 잘못된 건 아니지 않을까.


posted by 드쏭
2018. 10. 15. 12:03 ◑ Got impressed/By books

숨결이 바람 될 때 in Korean


작년인가 한창 인기 있었을 때 읽어보고 싶었으나, 도서관마다 대출 중에 예약까지 꽉 차 있어서 미뤄놨던 책이다

요즘 동네 도서관에 원서 책이 많이 구비되어 있어서 보다가 딱 발견해서 집었다 ㅎㅎ 원래 원서로 살까 했었는데.. 다 읽고 난 후 든 생각은 안 사길 잘했다.. 의학 용어가 많이 나와서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문장이 길지 않고 전반적인 단어 수준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다. Persuasion보다 쉬운 느낌


이 책은 에세이 형식으로, 저자가 암에 걸리기 전과 그 후에 대해 적은 글로 주요 키워드는 '죽음' 이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는 있겠지만 대부분 직접 피부로 와닿게 느끼면서 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도 마찬가지로, 의사로서 환자들을 대해왔지만 본인이 병에 걸리고 나니 보이게, 느끼게 된 것들에 대해 적었다. 이를 통해 독자인 우리는 결코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느껴보고 인생에서 중요한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를 가지게 된다



(재밌는 표현)

192  I did it once, so it should be old hat, right?



(인상적이었던 구절들)

115  Death comes for all of us. For us, for our patients: it is our fate as living, breathing, metabolizing organisms. Most lives are lived with passivity toward death-it's something that happens to you and those around you. But Jeff and I had trained for years to actively engage with death, to grapple with it, like Jacob with the angel, and, in so doing, to confront the meaning of a life. We had assumed an onerous yoke, that of mortal responsibility. Our patients' lives and identities may be in our hands, yet death always wins. Even if you are perfect, the world isn't. The secret is to know that the deck is stacked, that you will lose, that your hands or judgement will slip, and yet still struggle to win for your patients. You can't ever reach perfection, but you can believe in an asymptote toward which you are ceaselessly striving.


172  Human knowledge is never contained in one person. It grows from the relationships we create between each other and the world, and still it is never complete. And Truth comes somewhere above all of them, where, as at the end of that Sunday's reading,

the sower and reaper can rejoice together. For here the saying is verified that "One sows and another reaps." I sent you to reap what you have not worked for; others have done the work, and you are sharing the fruits of their work.


180  My life up until my illness could be understood as the linear sum of my choices. ... But now I lived in a different world, a more ancient one, where human action paled against superhuman forces, a world that was more Greek tragedy than Shakespeare. No amount of effort can help Oedipus and his parents escape their fates; their only access to the forces controlling their lives is though the oracles and seers, those given divine vision.


224  "Bereavement is not the truncation of married love," C.S. Lewis wrote, "but one of its regular phases-like the honeymoon. What we want is to live our marriage well and faithfully through that phase too."


posted by 드쏭
2018. 9. 30. 14:53 ◑ Got impressed/By books


먼 길을 돌아 결국은 다시 만난 두 남녀의 이야기


Pride and Prejudice를 읽을까 하다가 Persuasion이 재밌다는 리뷰를 좀 봐서 선택. 이걸 영어 말하기 연습한다고 눈뜨자마자 입밖으로 소리내는 방식으로 읽었다. 각 챕터가 약 20분 내외나 30분? 정도로 적당하게 나눠져 있어서 한 챕터씩 읽기에 좋았다.

확실히 문장이 올드하긴 하다. 특정 패턴의 문장이 있고 그걸 반복해서 쓰는데 이 문장이 구어체나 미디어나 현대에서 잘 안보이는 문장들. 단어들도 고전 문학에서 보이는 약간은 오래된 단어들과 쉽지 않은 형용사와 동사들. 나는 보통 처음 읽을 때는 특정 단어 하나 때문에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어를 안 찾고 유추한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였고 단어가 어렵긴해도 전반적인 스토리를 따라가는데 큰 지장을 주진 않았다. 다만 재미가 약간 줄어들 수는 있을 것 같다. 100프로 이해하지는 못하니까.

결론이 급 지어진 느낌도 있지만 보다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그만큼 서론이 길었다는 생각도 들고 길어도 지루하지는 않았던 소설. 마지막 몇 개 챕터가 특히 재밌었는데 설렘주의다. 달달 그 자체. 기분이 좋아짐 ㅋㅋㅋ 이걸 위해 그렇게 돌아온 것이겠지..



내가 생각하는 Persuasion 이란, 이 것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것



posted by 드쏭
2018. 9. 30. 14:52 ◑ Got impressed/By books


"아는 만큼 보인다. "


그림의 완성도 향상을 위해 고민하다보니 미술이론에 대한 부족함을 많이 느끼게 되었다. 특히 빛과 그림자 처리에서 어려움을 느껴서 선택한 책.

원래 번역서보다는 원서를 선호하는 편인데 (번역체의 어색함이 별로라서) 이건 많이 거슬리지는 않았다. 그림과 함께 보면서 이해할 수 있어 구성도 괜찮았다. 중요한 이론이지만 쉽게 풀어놓은 책. 그래서 깊은 지식이 담겨있지는 않지만 이 책만 봐도 대강의 빛과 그림자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을거라 생각된다. 보다가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네이버와 구글의 힘을 빌려 이해를 하면서 넘어갔지만 여기 나온 이론 자체가 제임스 거니 이 분의 해석과 의견이 담긴거라 구글에서 쳐도 이 분의 블로그 글만 나오기도 하였다.

어쨌든 이 책을 다 보고 난 후인 지금, 주변 세상을 보는 눈이 아주 약간은 달라진 것 같다고 느낀다. 예를 들어, 나뭇 구멍이 뚫린 그림자를 보면 'Dappled Light' 로 인해 저런 모양의 그림자가 생기고 있구나, 물에 비친 빛을 보면 'Caustic' 효과로 인해 저렇게 반짝이는 구나, 그림자가 어떤 방향과 기울기로 지고 있는지 등 조금 더 의식적으로 인식 및 관찰을 하게 된 것이다. 이론이 실제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니 구경하는 것 자체가 더 재밌기도 하다.

보는 즐거움이 지식으로 연결되기를 바란다. :)

posted by 드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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