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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0.22 <한국이 싫어서 - 장강명> 181019
2018. 10. 22. 15:57 ◑ Got impressed/By books

아는 언니의 추천을 받아서 읽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계나'로 금융회사에서 3년을 일하다가 한국이 싫어서, 못 살겠어서 호주 워홀을 결정하고 떠나는 이십대 중후반의 여성이다. 같은 성별이라서 그랬을까, 내가 호주를 갔던 시기랑 비슷해서였을까, 소설 속에 마치 나의 경험을 적어놓은 듯 공감이 가고 추억이 떠오르면서 웃음이 나왔다. 문체도 인터넷 소설(?)처럼 가볍게 적혀있어서 쉽고 금방 읽히면서 재미있었다. 가벼운 형식이지만 메시지가 담겨있는 그런 책이었다. 아마 고민이 많은 대학교 고학년, 취준생, 직장인들이 읽으면 그 고민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120  사실 지루한 얘기는 두 가지뿐이었어. 은혜 시어머니 이야기, 그리고 미연이 회사 이야기. 그런데 은혜랑 미연이 그 두 얘기를 너무 오래 하는 거야. 몇 년 전에 떠들었던 거랑 내용도 다를 게 없어. 걔들은 아마 앞으로 몇 년 뒤에도 여전히 똑 같은 얘기를 하고 있을 거야. 솔직히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없는 거지. 걔들이 원하는 건 내가 “와, 무슨 그럴 쳐 죽일 년이 다 있대? 회사 진짜 거지같다. 한국 왜 이렇게 후지냐.”라며 공감해 주는 거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냐. 근본적인 해결책은 힘이 들고, 실행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니까. 회사 상사에게 “이건 잘못됐다.”라고, 시어머니에게 “그건 싫다.”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가 무서운 거야. 걔들한테는 지금의 생활이 주는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이 너무 소중해.

- 그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을 뒤로 하고 상황을 바꿀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상황과 주변 탓만 하고 있는 것이다 라는 말에 매우 공감한다. 그렇게 불만이고 마음에 안 들면 해결을 하면 되는 것이다.


160  “똑같이 하와이에 왔다고 해도 그 과정이 중요한 거야. 어떤 펭귄이 자기 힘으로 바다를 건넜다면, 자기가 도착한 섬에 겨울이 와도 걱정하지 않아. 또 바다를 건너면 되니까. 하지만 누가 헬리콥터를 태워 줘서 하와이에 왔다면? 언제 또 누가 자기를 헬리콥터에 태워서 다시 남극으로 데려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그런 면에서 나는 파블로보다 형편이 나아. 파블로는 바다를 건너다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었어.(아무리 펭귄이 헤엄을 칠 줄 안다지만, 그래도 근본은 새잖아.) 하지만 내가 호주에서 산다고 해서 죽기야 하겠어? 기껏해야 괜찮은 남자를 못 만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사는 거지. 그런데 호주에서는 알바 인생도 나쁘지 않아. 방송기자랑 버스 기사가 월급이 별로 차이가 안 나.

...

몇 년 전에 처음 호주로 갈 때에는 그 이유가 ‘한국이 싫어서’였는데, 이제는 아니야. 한국이야 어떻게 되든 괜찮아. 망하든 말든, 별 감정 없어……. 이제 내가 호주로 가는 건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야. 아직 행복해지는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호주에서라면 더 쉬울 거라는 직감이 들었어.

- 마치 최근 내가 했던 생각을 적어 놓은 것 같다. 내 생각을 어머니께 말씀 드렸을 때 어머니께서 그거 안되면 어떻게 할거냐고 하셨고, 나는 안될거 생각하고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씩씩한 척 했지만 물론 나도 두렵고 불안하다. 하지만 두려워만 하고 있으면 변화를 위한 행동을 할 수 없고, 그러면 나중에 그 행동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과 후회로 괴로워질 것 같다.

행복해지는 방법을 잘 모른다는 계나와 달리, 나는 호주 생활과 그밖의 경험을 통해 언제, 어떤 것을 통해 행복함을 느끼는지 조금은 안다. 행복을 느끼는 여러 순간들 중에 그 행복감이 오래 지속되면서 강도가 큰 그 활동이 나의 삶에서 보다 더 많은 파이를 차지할 수 있도록, 즉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소망하면서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 이게 맞는건지 아닌지 밑바닥에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고, 이것을 추구함으로써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그렇지만, 이걸 하지 않는다면 그 후회가 너무 클 것 같아서,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나중에 4,50대가 되었을 때 지금의 결정을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때까지 산다는 100% 보장은 없지 않나 라며 내 결정에 대한 근거로 삼으면서 마음을 다 잡는다.



184  밥을 먹는 동안 나는 행복도 돈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 거야. 어떤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 데서 오는 거야. 그러면 그걸 성취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서 사람을 오랫동안 조금 행복하게 만들어 줘. 그게 자산성 행복이야. 어떤 사람은 그런 행복 자산의 이자가 되게 높아. 지명이가 그런 애야. ‘내가 난관을 뚫고 기자가 되었다.’는 기억에서 매일 행복감이 조금씩 흘러나와. 그래서 늦게까지 일하고 몸이 녹초가 되어도 남들보다 잘 버틸 수 있는 거야.
어떤 사람은 정반대지. 이런 사람들은 행복의 금리가 낮아서, 행복 자산에서 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런 사람은 현금흐름성 행복을 많이 창출해야 돼. 그게 엘리야. 걔는 정말 순간순간을 살았지.
여기까지 생각하니까 갑자기 많은 수수께끼가 풀리는 듯 하더라고. 내가 왜 지명이나 엘리처럼 살 수 없었는지, 내가 왜 한국에서 살면 행복해지기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나는 지명이도 아니고 엘리도 아니야. 나한테는 자산성 행복도 중요하고, 현금흐름성 행복도 중요해.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 나한테 필요한 만큼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하기가 어려웠어. 나도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지. 나는 이 나라 사람들 평균 수준의 행복 현금흐름으로는 살기 어렵다, 매일 한 끼만 먹고 살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는 걸.

미연이나 은혜한테 이런 걸 알려 주면 좋을 텐데. 걔들은 방향을 완전히 잘못 잡고 있어. 시어머니가 자기 회사를 아무리 미워하고 욕해 봤자 자산성 행복도, 현금흐름성 행복도 높아지지 않아.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 자기 행복을 아끼다 못해 어디 깊은 곳에 꽁꽁 싸 놓지. 그리고 자기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야. 집 사느라 빚 잔뜩 지고 현금이 없어서 절절 매는 거랑 똑같지 뭐.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남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해. 가게에서 진상 떠는 거, 며느리 괴롭히는 거, 부하 직원 못살게 구는 거, 그게 다 이 맥락 아닐까? 아주 사람 취급을 안 해주잖아.
난 그렇게 살지 못해.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고.
정말 우스운 게, 사실 젊은 애들이 호주로 오려는 이유가 바로 그 사람대접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접시를 닦으며 살아도 호주가 좋다 이거지. 사람대접을 받으니까.
그런데, 그 근성 못 고치면 어딜 가도 똑같아. 호주에 와서 교민이 유학생 무시하고 유학생이 워홀러 무시하는 식으로 이어져. 그 근성 고치려면 자산성 행복을 좀 버리고,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해야 해.

- 보다 사람다운 대접을 받기 위해서. 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작품 해설)

200  마지막에 그녀는 한국에서 출국해 호주로 귀국하며 “난 이제부터 진짜 행복해질 거야.”라고 다짐한다. 이쯤에서 계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야겠다. 나는 그녀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확신한다. 뭔가를 성취한 기억으로 조금씩 오랫동안 행복감을 느끼는 ‘자산성 행복’이든, 어떤 순간 짜릿한 행복감을 느끼는 ‘현금흐름성 행복’이든, 효율성의 잣대로 손익을 계산하는 한 계나는 행복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동생 ‘예나’가 사귀는,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한다는 남자 친구를 평가하는 그녀를 보라. 계나는 본인이 여태껏 냉소적으로 비판하던 사람들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그녀는 쉽게 행복해지기 위해 호주 이민을 단행했다고 말한다. 솔직하고 구체적인 속내는 이렇다. “내가 호주에 간 것은 내 신분이 오를 가능성이 있는 방향으로 한 일이야.” 지명의 가족에게서 신분 차이의 굴욕을 절감했으므로, 계나는 신분 상승이야말로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라고 신봉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경제적 감각에 침윤된 관점이 변하지 않으면 그녀는 틀림없이 불행해진다.

앞에서 나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서의 탈출을 꿈꾸고 결단해야 한다고 썼다. 탈출은 어디인가로 도피하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상 한국 사육장의 외부에서 외국 사육장이 있을 따름이다. 달아나도 가축으로밖에 생존할 수 없다. 언어와 문화가 상이할수록 그렇게 살 확률은 커진다. 그렇다면 진정한 탈출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육장 내에서 가축이라는 포박을 풀어내는 데 달려 있다. 사육 이데올로기를 온몸으로 거부하고, 사육장의 주인을 쫓아내야 한다. 계나는 반문할 것이다.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서 이기는 게 멋있다는 건 나도 아는데……. 그래서, 뭐 어떻게 해? 다른 동료 톰슨가젤들이랑 연대해서 사자랑 맞짱이라도 떠?” 나는 답변할 것이다. “톰슨가젤들이랑 사자랑 맞짱뜨자는 게 아니야. 톰슨가젤들이랑 사자랑 연대해서 우리를 부숴버리자는 거지.” 이것이 사육장 너머를 지향하는 내가 최종적으로 도출한 방안이다. 입때껏 계나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난 당신의 견해가 궁금하다. 자, 담화를 시작해 보자.

- 내 마음의 아주 깊은 밑바닥에는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가 있는 것은 아닐까 꼬집힘을 당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분 상승은 뒤따라 오면 좋은 것이고 아님 말고. 그게 최우선으로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우리를 부순다는 말. 그게 지금의 사회를 바꾸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방향이긴 하겠으나, 어떻게 연대를 해야할지, 혼자 노력한다고 연대가 되는 걸지, 사실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약간의 뜬 구름 같아 보여서. 뜬 구름이 아닌 나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려고 하는 것이 잘못된 건 아니지 않을까.


posted by 드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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